예루살렘과 새 예루살렘 –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성지는 어디인가

예루살렘의 모습

1)예루살렘은 지중해 동쪽 약 55km, 사해 서쪽 25km 지점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도시다. 1967년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지만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행정수도는 텔아비브다.

현재 도시화된 예루살렘은 성경 속 예루살렘에 비해 크게 확장되어 있다. 북동쪽에 위치한 구시가(Old City)에 성경의 배경이 된 고대 예루살렘이 세워져 있었다. 당시 동쪽으로는 기드론 골짜기, 남쪽으로는 힌놈의 골짜기가 둘러싸고 있었다.

구시가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성지로 여기는 장소가 밀집되어 있다. 면적이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구시가는 유대인, 기독교인, 모슬렘, 아르메니아인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다. 2000년 예루살렘 통계 연감(Statistical Yearbook of Jerusalem)에 따르면 예루살렘에는 1204개의 회당, 158개의 교회, 73개의 모스크(이슬람사원)가 있다고 한다. 2)

구시가 동쪽에는 예수가 승천한 감람산(Mount of Olives)이 있다. 감람산 기슭에는 예수의 수난이 시작된 겟세마네동산,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던 성전산(Temple Mount)이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모리아산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성전산에 남아 있는 옛 성벽의 일부인 통곡의 벽(Wailing Wall)은 유대교에서 최고의 성지로 여기는 기도처다. 알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는 이슬람교의 교조 마호메트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 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슬렘들이 메카,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로 꼽는 성지다.

구시가 북서쪽에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랐던 골고다3)(갈보리) 언덕이 있다. 이곳에는 성묘교회(거룩한 무덤 성당, 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세워져 있다. 성묘교회는 가톨릭, 그리스정교회, 콥트교회4), 시리아정교회5), 아르메니아정교회6) 등 여러 교파가 구획을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 교회 열쇠는 모슬렘이 갖고 있다. 구시가 남쪽 시온산 인근에는 다윗왕의 가묘,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했던 마가의 다락방, 실로암 연못 등이 있다.

고대의 예루살렘

B.C. 14세기경의 아마르나 문서7)(Amarna Letters)에는 예루살렘이 ‘우르살림(Urusalim)’으로 불렸던 기록이 있다.8) 성경에 따르면 ‘여부스’라고도 불렸다.9)

예루살렘이 처음으로 언급되어 있는 성구는 여호수아 10장 1절이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을 정복해나가던 때였다. 당시 예루살렘의 왕은 아도니세덱이었다. 학자들은 창세기 14장의 살렘이 예루살렘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멜기세덱10)도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인연은 아브라함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부친 데라와 함께 고향(우르)을 떠나 하란에 정착해 살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로 가나안으로 이주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역이다. 아브라함은 바로 예루살렘의 모리아산11)에서 일생일대의 테스트를 치렀다.

바빌로니아에 잡혀 있던 유대인을 해방하는 키루스 2세

후에 아브라함의 후손 야곱 일가는 이집트로 이주하여 하나님의 예언대로 430년간 이방의 객이 되어 살게 된다. 이집트를 나온 것은 B.C. 1498년경 유월절을 지킨 직후였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영도 하에 40년의 광야생활을 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입성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이스라엘은 사사시대를 거쳐 이스라엘 통일왕국시대를 맞는다. 제2대 왕이었던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긴 후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한 후에는 신앙의 중심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예루살렘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되었지만 나라와 종교 간에 뺏고 뺏기는 분쟁의 역사가 되풀이된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올더스 헉슬리12)(Aldous Huxley)는 예루살렘을 두고 “종교들의 도살장”이라고 비꼬았다.13)

예루살렘의 멸망, Francesco Hayez, 1867년

예루살렘은 BC 587년경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14)(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당한다. 이때 솔로몬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이후, 페르시아의 키루스대제15)가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유대인들을 해방시켰다.

본국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게 되었지만 이후 헬라에 이어 로마의 지배 아래 박해를 받는다. 유대인들은 로마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A.D. 70년 예루살렘은 티투스16)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함락당했다. 도시는 불길에 휩싸였고, 수많은 희생자들과 함께 잿더미가 되었다.

중세의 예루살렘 – 십자군전쟁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원정을 호소하는 우르바누스 2세

예루살렘이 이슬람교의 손에 들어간 것은 637년이었다. 예루살렘은 참회와 순례를 위한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랍계 사라센17)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순례객들을 후대했다. 1076년 터키계 사라센, 셀주크튀르크(Seljuk Turk)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부터는 순례를 방해하고 나섰다. 십자군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순례객들이 위험에 처하고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 군사적으로 위협을 받자 동로마제국의 황제는 교황에게 지원군을 요청한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1095년 11월 프랑스의 클레르몽에서 종교회의18)를 소집하고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가톨릭은 교황의 주도 하에 원정군을 모집했다. 모집 요강은 대략 이러했다.

  • 종군자의 가족과 재산은 교황이 보호해준다.
  • 종군자의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 형무소에서 복역 중인 자가 종군하면 세상의 법적인 죄와 종교적인 죄도 모두 용서받는다.
  • 종군자의 빚은 탕감되고 전사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
  • 동방에서는 성자의 유골, 금은보화, 미녀가 많으니 얼마든지 전리품으로 가져올 수 있다.

파격적인 조건에 가난한 민중과 농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종군에 지원했다. 그들은 이교도들을 소탕하고 예루살렘에서 전사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중에는 순수한 청년, 사기꾼, 불량배, 수감자도 끼어 있었다. 1096년 가을 1차 원정을 시작으로 모두 9차에 걸친 대전투가 벌어졌다. 오합지졸로 구성된 십자군은 어느새 교황이 약속했던 금은보화와 미녀를 찾아다니는 강도단으로 돌변했다.

약 200년 동안 가톨릭과 사라센 사이에 벌인 십자군전쟁은 사라센19)의 승리로 끝이 났다. 십자군전쟁이 “교황의 실패작인 성전(聖戰)”이라 불리는 이유다. ‘십자군’이라는 말은 종군을 할 때 오른팔과 어깨에 붉은 십자가 휘장을 붙였기 때문이다.

근현대의 예루살렘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하는 다비드 벤구리온

19세기 말 유럽의 유력한 유대인들을 시작으로 시오니즘20)이 일어났다. 그 성과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나타났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21)에서 승리하여 예루살렘을 수복한다. 로마군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1900년 만의 일이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름과는 정반대로 ‘중동의 화약고’라 불린다. 세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두 민족(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혈전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지만 다윗이 추구했던 신앙의 거점으로서의 색채는 찾아보기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이 지닌 신성한 이미지는 여전히 퇴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윗이 왕국의 수도로 삼은 이래 이스라엘 회중은 유월절 등 하나님의 절기22)를 맞으면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이러한 신앙적 전통은 신약시대까지 계승되었다. 복음 기자들은 예수가 절기를 맞으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기록했다.23) 특히 예수는 공생애 마지막 한 주간을 줄곧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태평성대보다 전쟁의 역사를 더 많이 간직하고 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목한다. 실제로 성경은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고 예언하고 있다.24)

정방형의 지성소를 보여주는 성막의 모형

성경에 언급된 ‘예루살렘’ 또는 ‘예루살렘 성전’은 종종 독자들의 시선을 끈다. 사도 요한은 천사가 보여준 하늘 예루살렘 성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거룩한 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하늘 예루살렘에 대해 살피다 보면 솔로몬이 건축했던 성전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동일하게 정방형 구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25) 정확하게는 언약궤가 보관된 내소 즉 #지성소의 규모가 같다.

성곽은 벽옥으로 쌓고, 기초석은 열두 가지 보석으로, 열두 개의 문은 진주로, 성과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도배했다. 규모도 만만치 않다. 요한이 계시로 보았던 성의 길이, 넓이, 높이는 12,000스다디온이다. 스다디온(Stadia)은 헬라에서 쓰이던 도량형으로 1스다디온은 185m(600ft)가량이다. 환산하면 하늘 예루살렘 성은 약 2,200km(7,217,800ft)의 정육면체 구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묘사된 새 예루살렘 성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건축물이다. 21장 서두에 그 단서가 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라는 묘사들이다.26)

구약성경에도 예루살렘은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단순히 지명이나 건축물이 아닌 사람, 특히 여성과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27)

수수께끼 같은 새 예루살렘의 존재에 대해 #갈라디아서의 기자, 사도 바울은 한마디로 명쾌한 답변을 내놓는다. 하늘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라는 것이다.28) 바울의 증언에 따르면 아라비아에 있는 예루살렘은 이미 2천 년 전에 성지로서의 권위를 상실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비유된 어머니를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찾아야 할 성지가 ‘하늘 예루살렘’, 즉 어머니 하나님29)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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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루살렘(히브리어: יְרוּשָׁלַיִם 예루샬라임, 아랍어: القدس 알쿠드스[*], 영어: Jerusalem, 문화어: 꾸드스)은 예로부터 종교 분쟁에서 불씨가 되어온 중동에 있는 도시이다.|
3)
골고다(히브리어)는 라틴어로 갈보리(Calvary)라고 하여 해골을 뜻하는데, 예로부터 공개 처형장이었다고 한다.
4)
동방 가톨릭교회 중의 하나이다. 전례 양식은 알렉산드리아 전례이며 동방 가톨릭교회 중 유일하게 전례 언어로 고대 이집트어에서 파생한 콥트어를 사용한다.
5)
에페수스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의된 교리를 거부한 오리엔트 정교회를 이루고 있는 기독교 교파이다.
6)
아르메니아에 있는 오리엔트 정교회에 속한 기독교 교단이다. 전세계의 신자 수는 약 900만 명이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라고도 함.
7)
점토판에 쓰여진 외교 문서로, 아마르나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유물이다.
9)
여호수아 15:8, 사사기 19:10
10)
고대 예루살렘 지역을 다스리던 왕이자 제사장이며, 아브람에게 나타나 축복을 하고 아브람으로부터 소득의 십분의 일인 십일조를 받았다. 창세기 14장에 단 한번 짧게 등장하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11)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데려갔던 장소였고, 솔로몬 시대에 이 모리아산에 성전이 세워지게 되었다.
12)
영국 출신의 작가(1894~1963)로 1921년 소설 <크롬 옐로>로 인정받음
13)
Jerusalem: The Biography, Simon Sebag Montefiore, Knopf Doubleday Publishing Group, p. 23, ISBN 9780307266514
14)
신바빌로니아 칼데아 왕조의 2대왕(B.C.604년 ~ 562년 재위)으로 수도 바빌론에 기념 건축물 바빌론의 공중 정원을 세웠다.
15)
종교적 관용과 다른 민족에 대한 배려가 뛰어난 관대한 군주로 알려져 있고, 구약성경 에스라 1:1~4에는 “고레스”로 나오는데 바빌론 유수로 바빌로니아에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켰다.
16)
로마 제국의 열 번째 황제이며 아버지는 로마 제국의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이다.
17)
원래 로마 제국 말기에 시나이 반도에 사는 유목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스어 Σαρακηνός에서 유래 했는데 이 말은 아랍어의 '동쪽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의 شرقيين (사라킨)이라는 단어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18)
1095년 11월 18일부터 11월 28일까지 프랑스 클레르몽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합동 주재로 열렸던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회의이며, 이 회의를 주재한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11월 27일 되는 날, 공의회 연설에서 제1차 십자군 원정을 호소하였다.
19)
아라비아 지역에 기독교가 자리잡은 이후에는 아라비아에 사는 민족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다가 7세기 이슬람교가 성립한 뒤부터는 사실상 이슬람교도와 동일한 의미로 쓰였다.
20)
시온주의(히브리어: ציונות, 영어: Zionism 시오니즘[*]) 또는 유대주의, 유태주의(猶太主義, 문화어: 유태복고주의(猶太復古主義)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이다.
21)
독립 선언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에는 이집트,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군들이 들이닥쳐 1948년 제1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였다.
22)
구약의 일곱 가지 유대 절기: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23)
누가복음 2:41~42, 요한복음 2:13
24)
이사야 4:3, 24:23, 31:5, 33:20, 예레미야 4:5
25)
열왕기상 6:20, 요한계시록 21:16
26)
요한계시록 21:2~10
27)
이사야 52:2, 62:7, 66:13
28)
갈라디아서 4:26
29)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복수의 신을 의미하는 '엘로힘'이라 표현된 것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가 창조된 것은 남성 형상의 아버지 하나님과 여성 형상의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방증한다(창세기 1:26~27).